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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하다는 원래 한자어?!

kye2330 2020. 9. 6.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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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중국어 팟캐스트를 듣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 한번 검색을 해보았는데, 한자 자체가 매우 낯설었다. 그것은 바로 : 斟酌 (zhen1 zhuo2)

 

팟캐스트를 들은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나름대로 많은 어휘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다시 겸손해지는 순간이다. 새로운 단어가 나와서 신기하고 재밌..기도 하고 가끔은 절망감이 ㅋㅋ 아무튼 중국어 사전에 검색해봤더니 이게 바로 '짐작'하다라고...?!

 

내가 알고 있던 한국어 '짐작하다'는 막연히 순한국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한자어이고, 심지어 '짐작'의 한자는 간체자와 동일한 '斟酌'인데 각각의 뜻이 매우 흥미롭다. (출처: https://hanja.dict.naver.com/word?q=%E6%96%9F%E9%85%8C&cp_code=0&sound_id=0)

 

 

斟酌 (짐작):

①어림쳐서 헤아림 ②겉가량으로 생각함

 

斟 (짐):

(1) 짐작하다, 헤아리다, 주저하다

(2) 푸다, 술을 따르다, 조리하다, 국, 음료

 

왼쪽에 있는 '甚'가 소리, 오른쪽에 있는 '斗 (말 두)'가 뜻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이란 '한 말, 두 말'할 때 우리가 아는 그 용량을 세는 단위이다. 그리고 이 글자는 '국자'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말'이라는 뜻으로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원래 모양 '국자'부터 생각하면 왜 斟이 '푸다, 술을 따르다, 국, 음료'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액체를 따르거나 풀 때는 그 치수를 재는 정확한 용기가 없다면 감으로 헤아릴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항상 라면에 물 부을 때 자주 쓰는 컵 몇 번이라고 기억하듯이..) 그래서 아마 음료와 관련된 뜻에서 '짐작하다, 헤아리다, 주저하다'라는 의미로 파생이 되었을 것이다.

 

酌(작):

(1) 짐작하다, 헤아리다

(2) 술을 붓다, (술을) 따르다, (술을) 마시다, 술, 술잔

 

왼쪽에 있는 酉(닭 유)가 소리, 오른쪽에 있는 勺(구기 작)가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술을 의미하는 한자 酒(술 주)를 생각해보면 아무리 봐도 둘 다 뜻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酒를 사전에 찾아봐도 酉는 술병을 형상화한다고 나와 있다. 실제로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과거에는 '닭'과 '술병'이 다른 모양의 문자였을지 모르나 그것이 점점 간소화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동일한 모양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勺는 사실 중국어를 배운 사람이라면 매우 자주 보는 단어이다. 勺子(shao2 zi) 가 바로 국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훠궈집 가면 보이는.. 숫가락도 국자도 아닌 것이 밥을 먹기에는 참 불편한.. 그것의 이름이 바로 勺子이기 때문에 중국어를 배우거나 중국에 놀러갔다온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표현.. ㅎㅎ

 

종합해보면 酌는 '술병과 국자'에서 유래했으며 斟와는 달리 술을 '따르다', '마시다' 두 개의 뜻이 동시에 있다. 斟과 

둘 중 무엇이 먼저 생긴 글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이렇게 아주 유사하거나 뜻이 동일한 글자가 있으면, 한 글자의 뜻이 약간 변경되는 과정을 겪기도 한다. (영어에서는 순게르만 단어와 라틴/프랑스어 유래 단어가 동일한 뜻으로 동시에 있는 경우, 전반적인 의미는 같으나 세부적인 의미영역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아마도 酌가 굳이 '마시다'라는 뜻을 가질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도 '마시다'가 추가된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추측!

 

그리고 생각해보면 酌는 斟보다 우리 일상에서 훨씬 친숙한 단어이다. 술 마실 때 누가 혼자 따라 마시면 '자작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여태껏 술을 마시면서 들어왔지만 한번도 정확한 뜻을 찾아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自酌 (술을 제 손으로 따라 마심)이라는 뜻이다. ㅋㅋㅋ 

 

출처: Unsplash / https://unsplash.com/

 

두 글자를 종합해보면 이런 그림을 상상하게 된다. 두 사람이 술을 서로 부어주고 마시면서 상대방의 속내를 헤아리려고 하는 모습. 직설적으로 터놓고 얘기해서 상대의 생각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짐작이라 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서 마치 스무고개를 하듯, 정곡을 찌르지 않고 주변부를 통해 중심을 파헤치는 것이 바로 짐작 아닐까? 직설적인 소통보다는 좀 더 우아한 느낌이 든다. 좀 더 인간적이기도 하고. 그러니 동서고금 어떤 문화에서든 술을 마시며 남녀, 비지니스, 친구 간의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많이 마시면 사실을 폭로하는 경우도 있지만ㅋㅋㅋ) 이 글자가 이런 사연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단어의 깊이는 엄청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비록 순한국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아한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뿌듯..!!